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인사이트/아는 척 하기 좋은 역사

영화 한산 보기 전 꼭 알아야 할 이순신과 한산도대첩에 대한 이야기

by 한숟갈 2022. 7. 25.
반응형

수군을 없애자

신립

그 당시 조선의 한 장군은 수군을 아예 없애고 육군만으로 왜적의 침략에 대응하자고 선조에게 제안했습니다. 바로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배수진을 펼쳤던 신립장군입니다. 신립이 바라보는 왜적은 고려말 왜구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려 말 왜구들은 우리 해안가에서 노략질이나 일삼던 자들입니다. 그 당시 해안가에 살던 우리 백성들이 부자였을까요?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겠다고 목숨 걸고 바다 건너온 애들입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힘이 없었는지 짐작이 안 갈 정도입니다. 신립은, 아니 그 당시 조선은 왜적을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립은 수군은 필요 없고 왜적들이 육지로 들어오면 한반도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서 상대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의 비참한 패배입니다. 신립의 부대가 배수진을 쳐서 왜적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조총에 몰살당한 그런 전투입니다. 뒤이어 한양도 개전 20일 안쪽으로 점령을 당했고 곧바로 평양도 점령당합니다. 참고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을 책임지고 있던 류성룡은 신립장군은 명장인 척하는 장군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선조도 신립의 말을 들어 육지 중심의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이때만 해도 선조가 이순신을 미워하기 전이기 때문에 수군을 없애면 안 된다고 한 이순신의 말을 들어주어 수군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행히 이순신의 수군은 왜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런 이순신의 대단한 행보에 선조는 쪼잔하게 질투를 합니다. 자신은 도망자 신세인데 이순신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대단한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시키고 고문하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옛날부터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에게는 찬밥 신세를 선사해주는 나라인 듯합니다. 

 

수륙병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륙병진을 택했습니다. 수륙병진이란 바다와 육지에서 군대가 아울러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전략을 택했던 이유는 바로 보급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보급입니다. 보급이 적절한 시기에 알맞게 되지 못하면 군대는 더 이상 전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보급을 해상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 해상을 통해서 보급을 하려고 할까요? 똑같은 양의 물자를 보급한다고 가정할 때 육지로 하면 말 100마리가 필요할 것이 배로 한다면 1척이면 충분합니다. 효율성이 다릅니다. 게다가 한반도는 지역적 특성상 매우 험준하고 산이 많기 때문에 육지로 보급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양으로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남해와 서해를 끼고 해상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중요한 보급로를 차단한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인 것입니다. 덕분에 일본은 적절한 보급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점점 힘이 빠지게 되고 평양에서 진군을 멈추게 됩니다. 도망간 왕 선조를 잡기 위해서 의주로 나아가야 하는데 보급이 되지 못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평양에서 멈추게 된 것이죠. 게다가 명나라의 진군으로 인해서 일본군들은 결국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아시는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 보시면 군사끼리 싸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드랍쉽을 태워서 일꾼들 많은 곳으로 가서 미네랄을 못 캐게끔 일꾼들을 죽여놓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이것은 한 번으로도 매우 치명적입니다. 미네랄이 없으면 군사도, 건물도, 업그레이드도 진행이 불가능해집니다. 바로 이순신이 이런 역할을 해준 것입니다. 

 

 

연전연승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연전연승이기 때문아닐까 생각됩니다. 누군가는 [명량]이나 [한산]을 두고 '국뽕'영화라며 비난합니다. 제가 이 비난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순신을 보고서는 '국뽕'이 차야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뽕'이 너무 심하다고 비난할 때는 영화에서 '억지로' 국뽕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보일 때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업적은 '억지로'가 절대 아닙니다.  팩트로만 보더라도 누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지만 한산도대첩 이전에도 이순신 장군은 연전연승이었습니다. 옥포해전, 함포해전, 적진포해전, 당항포해전 등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이길 수 있는' 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린 항상 이순신의 군대는 열악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산도 대첩 이전의 해전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대체로 일본 수군보다 전력이 좋았습니다. 더 많은 배로 해안에서 노략질을 하고 있던 일본선들을 기습 공격하는 것이 주된 전략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는 전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산도 대첩은 달랐습니다. 계속해서 이순신에게 패배를 맛봐서 열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대로 해군을 정비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산도 대첩은 일본도 제대로 준비된 해전이었습니다. 

 

 

준비된 해전, 압도적인 승리

한산도 대첩에서 일본 배는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입니다. 조선배는 판옥선 58척, 거북선 2척입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당시 전력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대장은 와키자가 야스하루입니다. 이미 용인전투 등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서 자신감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던 인물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전력으로 한산도대첩은 시작됩니다.

견내량에 매복해 있던 일본 수군을 피난인이 발견하고 이순신에게 보고됩니다. 그 이후 조선수군 몇 척이 견내량으로 다가갑니다. 이를 본 일본 수군은 조선수군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나약한 모습으로 후퇴하는 조선수군의 모습을 보며 일본 수군은 삼각형의 돌파진으로 바짝 뒤쫓았습니다. 한산도 앞바다까지 나왔을 무렵, 일본 수군의 눈에 넓게 퍼져있는 배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이순신의 학익진을 하고 있는 조선수군이었습니다. 정면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있고 위에는 철갑을 두른 배가 돌진을 해오고 있습니다. 바로 거북선입니다. 일본 수군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들려오는 화포 소리, 앞에 있는 대장선들의 파편이 이리저리 튀기 시작합니다. 앞에 거북선이 달려들어서 사방으로 화포를 쏩니다. 일본 수군의 조총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철갑을 둘렀기 때문입니다. 일본 수군은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화살이 날아들어 폭약이 터집니다. 배에 불이 붙습니다. '분멸'이라는 전법입니다. 화살에 폭약을 달아 일본 배에서 터뜨리는 것입니다. 일본 수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오후 1시쯤 시작된 한산대첩은 1시간도 안돼서 끝나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 배 59척이 나포 및 침몰이 되고 일본군인은 최소 3000~4000명, 최대 9000명이 수장됩니다. 와키자카는 겁에 질려 빤스런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보급이 중단되어 평양에서 의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명나라의 진군과 조선 육군의 반격에 의해 서서히 후퇴를 하게 되어 전세가 역전이 되어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산도대첩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일본군은 보급에 성공하게 되면서 의주까지 나아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조선 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배경지식을 갖고 영화 [한산]을 관람하신다면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명량을 감독했던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한산을 내놓은 것입니다. 박해일 배우가 이순신을 연기하였고 변요한 배우가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연기하였습니다. 저도 어떨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과연 최민식이 연기하였던 이순신과는 어떻게 다를까 참 궁금합니다. 

 

 

 

반응형

댓글